1948-1988: 글로벌 시장 진출
알버트 베링거(1861-1939)가 사망하고 그의 두 아들인 알버트 주니어(Albert jr., 1891-1960)와 에른스트 베링거(Ernst Boehringer, 1896-1965), 그리고 사위인 율리우스 리브레흐트(Julius Liebrecht, 1891-1974)가 회사를 물려받았습니다.

베링거인겔하임은 독일의 통화 개혁과 경제 부흥의 시대를 맞아 지속적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1955년, 전쟁 후 재건에 따른 전반적인 경제 호황으로 회사의 직원 수는 1939년에 비해 4배나 증가했습니다. 1950년대 말에는 우수한 신약이 잇달아 소개되면서 베링거인겔하임은 호흡기계, 심혈관계, 소화기계 질환 치료제를 위한 연구 프로그램의 기반을 형성했습니다.
차남인 에른스트 베링거 박사는 화학 및 제약 법인의 해외 시장 진출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1946년, 기존의 2개 공장에 토매(Thomae) 공장을 편입하면서 비버라흐 안 데어 리스(Biberach an der Riss) 지역에 첫 국내 자회사가 설립됐습니다. 1948년, 비엔나의 첫 해외 자회사 설립을 시작으로 유럽 등지에 해외 자회사가 잇달아 설립됐습니다.
선조 베링거의 두 아들, 알버트 주니어와 에른스트 베링거의 사후, 1965년 율리우스 리브레흐트가 이사회 회장으로 선출되고, 그의 아들인 후베르투스 리브레흐트(Hubertus Liebrecht)가 1967년 이사회에 합류, 1971년 회장이 되었습니다. 알버트의 아들인 빌헬름 베링거 박사(Dr Wilhelm Boehringer) 또한 1967년 이사회에 합류해 생산 기술 부서를 이끌었으나, 1975년 44세의 나이에 요절했습니다.

베링거인겔하임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 말까지 호흡기계 질환 치료제인 아루펜트®(Alupent® 1961년), 비졸본®(Bisolvon® 1963년), 베로텍®(Berotec® 1972년), 아트로벤트®(Atrovent® 1975년), 베로듀알®(Berodual® 1980년) 등 혁신적인 제품을 잇달아 출시했습니다.
심혈관계 질환 치료제로는 고혈압 치료제로 새로운 유효 성분을 사용한 카타프레산®(Catapresan® 1966년)을 출시했으며 이후 부정맥 치료제인 멕시틸®(Mexitil® 1979년)을 출시했습니다.
1977년에는 페르산친®(Persantin® 1959년)과 아세틸살리실산(acetylsalicylic acid, ASS)의 복합제이자 혈전증 및 색전증 치료제인 아사산친®(Asasantin®)을 시판했습니다. 뒤이어 1979년, 점액 용해제 뮤코솔반®(Mucosolvan®)을 출시했습니다.
1987년 출시된 액티라제®(Actilyse®)는 급성 심근경색에 사용하는 최초의 혈전 용해제이자, 베링거인겔하임이 1986년에 설립한 제약 바이오 생산 시설에서 자체 생산한 최초의 제품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